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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 버블은 앞에 소개한 튤립 광기와 사우스씨 버블과 함께 고전 경제기의 대표적인 버블로 꼽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막대한 피해를 입힌 버블이자 가장 큰 버블에 해당합니다.

미시시피 버블이 발생한 시기는 바로 루이 15세의 시기로 우리가 알기로는 루이 14세와 루이 15세가 엄청난 왕권정치를 펼친 시기로 기억하지만 경제적으로 보면 루이 14세가 이러한 왕권정치를 펼치기 위해 엄청난 사치를 하면서 왕실의 재정을 거덜 냈던 시기였습니다. 루이 14세의 할아버지인 앙리 4세가 프랑스의 비옥한 영토를 바탕으로 막대한 재정을 쌓아두어 프랑스가 부강한 나라가 되는데 기여했다면 손자였던 루이 14세는 이렇게 쌓은 재산을 왕권 과시를 위해 탈탈 털어먹었던 것이지요. 베르사유 궁전 건축과 각종 전쟁들로 인해 프랑스의 부채는 엄청나게 쌓였고 루이 14세의 사후에는 이 부채가 무려 30억 리브르(당시 연간 재정수입이 1억 4500만 리브르)에 이르게 됩니다. 그로 인해 국가 파산을 이미 두 차례 경험했던 터라 루이 15세의 섭정이었던 오를레앙 공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부에서 사람을 찾게 되는데 그때 눈에 띈 것이 바로 스코틀랜드 출신의 존 로 라는 인물이었습니다.


이 존 로는 상당히 특이한 이력을 갖춘 인물입니다. 존 로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출신으로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재산으로 투기와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다 여자를 놓고 결투를 하다가 상대방을 죽이는 바람에 감옥에 갇힙니다. 그런데 대담하게도 감옥에서 탈옥을 하여 당시에 번영을 구가하던 네덜란드로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네덜란드는 당시 최초의 주식회사라 할 수 있는 네덜란드 동인도 주식회사가 탄생하던 시기였고 증권거래소가 탄생하였고 사상 최초로 중앙은행이 암스테르담에서 탄생하여 그 기능을 수행하던 첨단 금융의 중심지였습니다. 로는 이러한 네덜란드의 첨단 금융에 완전히 매료되게 되고 금융 산업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지요.

로가 보기에는 네덜란드의 금융은 분명 첨단을 달리고 있었지만 단점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암스테르담 중앙은행이 돈의 가치를 높게 유지함으로(경화:Hard Currency) 주식시장과 상업이 더 발전할 수 있는 것을 제한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주식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주식의 발행수를 제한한다는 것도 그에게는 부당해 보였지요. 그는 곧 이탈리아 토리노로 근거지를 옮겨 아주 대담한 주장을 하기에 이릅니다. 그것은 그간 귀금속 화폐에 의했던 통화를 종이화폐로 바꾸자는 주장이었지요. 로가 보기엔 종이화폐는 귀금속화폐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강력한 정부가 이것을 보증만 한다면 사실상 똑같은 것이었지요. 이러한 로의 뜻을 펼치기엔 이탈리아 도시국가는 너무나 작았습니다. 로는 이러한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하려면 강력한 왕권으로 나라를 지배하는 국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프랑스였지요.


프랑스는 일단 부분적인 두 번의 파산으로 부채를 어느 정도 줄인 상태였습니다. 그러고도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서는 2억 5천만 리브르의 비예 데타라는 이자를 지급하는 단기채권을 찍어내야 했는데 거기다 통화의 금은 순도를 줄이려 하면서 통화가치가 폭락하고 프랑스 경제는 침체에 빠졌는데 존 로는 이때 오를레앙 공에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방법이란 공공은행이 은행권을 발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로는 방크 제너랄을 세우면서 금이나 은으로 태환(교환)할 수 있는 은행권을 20년간 발행할 권리를 얻었습니다. 방크 제너랄의 자본금은 총 600만 리브르로 5천 리브르의 주식 1200주와 프랑스 정부의 비예 데타로 나머지를 채웠지요. 여기에 로는 오를레앙 공을 설득하여 프랑스의 모든 세금을 방크 제너랄의 은행권으로 지불하도록 조치를 취했습니다. 로는 이런 방식으로 암스테르담의 공공은행을 프랑스에 세우는 것을 구상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암스테르담 은행이 금속화폐를 발행했다면 로는 종이화폐를 발행하는 것이 차이였습니다.

여기에 더해 네덜란드처럼 금융과 무역이 일치되는 것을 계획했는데 프랑스령의 식민지는 대부분 미개발 상태였으므로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땅덩어리인 북미의 루이지애나 지역을 개발하여 무역의 중심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로는 1717년 ‘웨스트 컴퍼니’를 설립하면서 향후 25년간 루이지애나의 상업 독점권과 통치권을 확보합니다. 그리고 웨스트 컴퍼니의 주식을 발행하면서 이 주식을 사기 위해서는 프랑스 정부의 단기 채권이었던 비예 데타로만 살 수 있게 했습니다.


이러한 조치로 프랑스 정부의 채무를 로가 줄여가자 오를레앙 공은 이에 만족하여 존 로에게 막대한 특권을 부과하기 시작했습니다. 웨스트 컴퍼니는 이후 담배 전매권을 획득하고 세네갈 컴퍼니의 특권도 접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방크 제너랄은 프랑스 왕실의 인가를 받아 프랑스 최초의 중앙은행인 방크 로얄로 승격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웨스트 컴퍼니는 이후 계속 확장해 나가 1719년에 동인도 회사와 중국 회사를 인수해 미시시피 회사로 이름을 바꾸기에 이르렀고 로는 거기에 더해 향후 9년간의 조폐 주조권을 얻었고 왕실에 12억 리브르를 빌려주어 미시시피사는 세금 징수권을 얻게 되었습니다.

로는 여기에서 좀 더 대담한 아이디어를 내는데 방크 로얄로 통화공급을 늘리면서 프랑스의 국가부채를 세금징수기관이자 독점무역업체인 미시시피사의 주식으로 전환하는 정책이었습니다. 처음에 로가 통화공급을 늘리면서 불황이었던 프랑스의 경기는 회복되었지만 이러한 채무전환은 기본적으로 미시시피의 주식이 상승해야만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로는 미시시피의 주식 가격을 띄우기 위해 갖은 수를 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거래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바로 존 로 자신이었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모든 것을 존 로가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현재의 방식대로 표현하자면 우리나라 50대 대기업 전체의 회장이자 한국은행 은행장이자 기획재정부 장관이 존 로 한 사람인 셈입니다.

그리고 곧 미시시피의 주식을 대량 발행하기 시작합니다. 일반적으로 주식 발행량을 늘리면 공급이 늘어나는 셈이므로 주식 가격은 하락해야 맞습니다. 존 로는 이 주식 가격을 하락하지 않을 뿐더러 상승하게 할 목적으로 루이지애나 지역에 대한 수익 전망을 조작했습니다. 그리고 드넓은 루이지애나 지역을 개척할 명목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루이지애나 지역으로 이주케 하면서 뉴올리언스라는 식민기지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루이지애나 지역의 대부분은 뜨거운 늪지대였고 이민자의 대다수는 황열병과 기아로 사망합니다.

로는 이제 주식 가격을 더욱 더 올리기 위해서 주식의 보유자들에게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기 시작했고 그 돈으로 다시 주식을 사게 했습니다. 처음에 530리브르로 시작한 미시시피의 주식은 1719년 8월에 2750리브르로 올랐다가 30일에는 4100리브르, 그리고 9월 4일에는 5000리브르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 해 12월엔 결국 1만 250리브르의 고점을 찍기에 이르지요. 미시시피 주식은 광기로 치달았습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미시시피의 주식을 사기에 바빴고 집을 담보로, 땅을 담보로, 보석과 귀금속을 담보로 돈을 빌려 미시시피 주식을 샀습니다. 광기는 극에 달했지요.


이러한 신용 버블은 결코 지속될 수 없습니다. 어느 순간 어느 지점에서 이 기대가 흔들리는 순간이 존재합니다. 즉, 광기가 의심으로 변하는 순간이지요. 이러한 가격에 하나 둘 씩 의심을 가지는 이들이 생기자 미시시피의 이 열광적인 주식 상승은 멈추고 점점 하락하기 시작합니다. 로는 이러한 주가의 하락을 막기 위해 옵션을 발행하는 등 수를 쓰지만 진짜 문제는 주식거래 밖 실물 경제에 있었습니다. 프랑스 경제에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불어 닥친 것이지요. 1720년 파리의 물가는 정점에 달했는데 직전 1년 동안 로가 풀어놓은 은행권이 2배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는 그 이전의 금속화폐 시절의 통화량에 비하면 4배나 많은 수준이었습니다. 이렇게 물가가 올랐기 때문에 사람들은 은행권에 의문을 가지고 금은으로 바꾸려고 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행권으로 거래되는 미시시피 주식도 매각이 필요했지요. 문제는 사람들이 미시시피의 주식을 팔면 시장에 더 많은 은행권이 풀려서 인플레이션을 촉진하고 이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미시시피 주식을 팔려고 하는 악순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 이르자 은행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금은과의 태환을 막아버렸습니다. 로의 제국은 바로 이 은행권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이었지요. 로는 이러한 대폭락을 막아보고자 통화 수축을 실시하는데 이로 인해 미시시피의 주식은 더 빠른 속도로 진행이 됩니다. 5월 중순에 9000리브르였던 주식은 월말이 되자 4600리브르로 추락했고 12월에 이르러선 1000리브르로 하락합니다. 버블은 이렇게 급격하게 꺼졌던 것이죠.


이 사건은  안 그래도 엉망이었던 프랑스재정을 아예 초토화 시켜버립니다. 때문에 이후의 프랑스 재무장관들이 이러한 재무구조를 개혁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나 번번히 귀족들의 반대에 부딪혀 계급간의 갈등이 커져갔고 엄청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프랑스 국민들의 삶도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면서 불만이 쌓이게 됩니다. 그리고 루이 16세때까지도 이 문제를 해결 못하면서 결국에 한꺼번에 폭발하게 된 것이 프랑스 대혁명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프랑스 대혁명에 가장 큰 원인이 된 사건이자 앞서 소개해드린 두 버블보다도 국민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던 것이 바로 이 미시시피 버블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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